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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끄적 끄적

장-미셸 오도니엘(Jean-Michel Othoniel) 개인전 My Way | 2011.11.10 |


  얼마전 엄청 추웠던 날 토샘이 과제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전시회에 다녀왔다.(토샘은 내 친구의 별명이다.) 
물론 나는 미술, 예술에 문외한으로써 전문적으로 분석하지는 못하지만 그냥 보고 느끼는 것을 즐긴다.
특히! 여타 전시회들처럼 엄청 비싼 가격도 아니고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이런 전시회를 무지무지 사랑한다. +_+ (사실, 예술은 누군가가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날이 엄청 추운날 토샘과 삼성미술관 플라토(Plateau) 앞에서 만났다. 삼성 미술관 플라토는(plateau)는 로댕의 <지옥의 문(The Gate of Hell)>과 <깔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로 유명한  로댕 갤러리였는데 새 단장을 해서 지금은 플라토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옥의 문>과 <깔레의 시민들>은 전시중이니 이 두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방문하여도 될 듯 싶다.

  글의 내용은 팜플렛에 나와있던 기본 설명과 더불어 나의 느낌이나 의견을 말할 것이므로 사진을 나의 글보다 앞쪽에 싣도록 하겠다. 그렇게 배열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더라도 해당 작품에 대한 나의 의견을 읽어 보기 전에 비록 사진뿐이더라도 작품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으면 한다.


삼성 미술관 플라토의 입구 -





스스로 서 있는 매듭

- 스스로 서 있는 매듭 -


   플라토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스스로 서 있는 매듭>이다. 장-미셸 오도니엘은 대게 둥근 구슬을 주로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데, 둥근 구슬의 직선적 모형을 제작하거나 서 있을 수 없는 묵주나 구슬 꾸러미들을 서 있는 형식으로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은 남성의 성기를 형상화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물론 작품에 대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으므로 내가 작품을 보고 여러가지 배경 지식을 동원하여 상상한 것이니 꼭 그런것 같다 라고 생각하지 말것.
자유롭게 생각해 보라. 작가는 왜 구슬같은 것을 세워 놓았을까? 둥근 것은 설 수 없다는 일반적 관념에의 반박이 아니었을까?

   내가 동원했던 배경지식인 '오도니엘이 신체와 관련된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작품의 바닥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세히 보면 아래의 바닥이 심장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우심방, 우심실, 좌심방, 좌심실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구분해 놓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니 정확한 것은 아니다.






- 자크 라캉의 매듭 -

   그 옆으로 보이는 보이는 작품은 공중에 매달려 있난 라캉의 매듭이다. 라캉의 매듭이란 자크-라캉과 관련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보로매우스의 매듭, 뫼비우스의 띄처럼 서로 얽혀 있는 듯 얽혀 있지 않은 그리고 하나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모든 매듭이 풀려버리는 형태로써의 아이러니함을 내포하고 있다. 작가 자신 상태의 한계 혹은 상상계, 실재계 그리고 상징계가 연결 되는 듯 하나 연결 되어 있지 않은 모습. 또는 연결 되어 있지 않으나 연결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작품으로 형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
  이 작품은 <사제복을 집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이다. 가운데 작은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수문에서 사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자신을 찍은 사진이다. 흰 여백에 흑백사진과 조명으로 오래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사진에선 잘 느껴지지 않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면 이외로 입체감이 느껴진다. 특히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매우 입체적으로 보인다.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
사실 오도니엘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사제였다.
오도니엘은 사제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함께 있던 다른 한 사제를 사랑했다. 즉, 그는 동성애자 였던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사제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애도와 자신에 대한 연민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행한다.

-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 - 






- 사제복 -

이것은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을 촬영할 때, 즉 자신의 애인을 애도함과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위를 할때 입었던 옷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사제복과는 달리 매우 얇다.
얼핏 느낌에는 우리의 상여복과 비슷한 것도 같다.





- 장식용 천에 그린 프랑스 지도(1988) -
(Map of France on toile de jouy)

오토니엘이 사진 작업을 위해 감광성 물질을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유황은 고유의 화려한 색채와 대조되는 재료의 자극적인 냄새, 그리고 변형적 특성 때문에 아름다움과 혐오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오토니엘의 작품세계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또한 프랑스어로 유황(Soufre)은 '고통 받다(souffrir)','병약한(souffretuex)'등과 유사한 발음으로, 이러한 언어적 연계는 그의 시적인 감성을 자극했다. 작품의 제목 <장식용 천 위에 그린 프랑스 지도>또한 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언어 유희로, '프랑스의 지도를 그린다'는 표현은 프랑스어로 '몽정'을 의미한다.




- 미끼들 (1992) -
(The Lures)

이 작품은 미끼들 이라는 작품이다. 4개의 각각의 물체(object)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작품들은 손의 형상에 들려져 있으며 들려져 있는 물건들은 한눈에 보아서는 무엇인지 잘 알기 어렵지만 추측해보자면 윗 사진의 오른쪽 순으로 심장, 눈썹, 폐, 눈알이 아닌가 싶다.

- 미끼들 (1992) -

(The lures)

 


 


 

 
 
 
 
 
 

 1992년 부터 1993년 사이 작가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비슷한 작품들을 여러개 만들어 내는데 <눈>,<매우 긴 고통의 시작>, <시빌의 구멍>, <비너스의 산> 등이 그러하다. 왁스를 가지고 만든 산모형안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안에 신체의 일부를 위치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가운데의 마치 세포같이 보이는 붉은 무리의 작품의 이름은 <유두회화1> 동성애자 였던 오도니엘답게 남성의 유두를 이용하여 회화를 표현하려고 했는듯 싶다. 실제로 앞에서 보면 흰 화판에도 접착제나 투명 wax를 이용하여 두들두들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 쾌락의 구멍 (1998) -
The Glory Hole

이 작품은 쾌락의 구멍이라고 불리는 작품인데. 커튼 뒤에 사람이 들어가 신체의 일부만을 비추는 형태의 작품이다. Glory Hole이란 남성 동성애자들의 포르노에 자주 등장하는 장치인데 이 장치를 기준으로 양옆의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채 그 구멍 사이로 비춰지는 신체의 일부에만 관심을 쏟는다. 유독 오도니엘은 신체 전체가 아닌 일부 혹은 상대에의 인지를 꺼려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어린 시절(사제시절)에 숨겨야만 했던 동성애와 교리에의 갈등에서의 도피였다고 생각한다.





- 검은색은 아름답다 -
Black is beautiful

오도니엘은 검은색에 집착하지는 않으나 작품에 검은색 요소들을 배치하면서 검은색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위 작품 외에도 흑요석이라고 불리는 광물로 만든 작품으로 <두음전환(1992)>이 있다. <두음전환>의 경우 그냥 매끄러운 새까만 돌 같이 생겼는데 무엇인가를 만들어 논것이라기 보다는 검은색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 같아 보인다.



 



- 상처 목걸이 -

이 작품은 오토니엘의 작품 초기에는 왁스와 고형물을 이용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면 1997년 이후로는 주로 유리를 이용한 작품이 주를 이루게 된다. 그 첫번쨰로 <상처 목걸이(1997)>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에이즈로 사망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작가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작가가 1000개의 목걸이로 제작했다. 오토니엘은 파리의 '게이 퍼레이드' 행사에서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목걸이 999개를 나누어 주고서 그 목걸이를 착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착용한 다양한 사람들의 평상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비밀스러운 상처를 안고 살고 있으며 그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1000개의 작품중에 999개만을 행사에 사용한 이유는 마지막 한개는 자신을 위한 목걸이로 현재까지도 절대 벗지 않고 착용 중이라고 한다.


 
 


플라토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전시되지 못한 오토니엘의 다른 작품들을 3D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눈앞에 실제로 보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360도 3D입체 영상이 지원되기 때문에 오토니엘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의 이름이라던지 설명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혹시 모르겠다. 전시 설명 프로그램을 듣게 된다면 자세히 설명해 줄지도..

 


 


- 행복의 일기 (2008) -


위 작품은 행복의 일기라는 작품으로 작가의 하루를 두었을때 행복했으면 흰쪽으로 불행했으면 검은 쪽으로 구슬을 옮기는 방식으로 쓴 일기란다. 당황 스러운 것은 마치 작품을 위해서 인듯이 하루는 행복 그 다음날은 불행 식으로 규칙 배열 되어있다는것. 정말 하루하루를 저렇게 계산해 두면 행복과 불행의 정배열이 생길까? 하는 의구심이 남지만, 작가의 아이디어가 기발한 작품인 것 같다.






- 눈물들 (2002) -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고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이 작품이다. 오토니엘은 작은 유리 모형을 이용해 부력을 실험하는 데카르트 잠수부 인형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이 가득 채워진 60개의 유리병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투명한 유리 병안에 물같은 것과 장신구들이 들어 있다. 유리병은 가만히 보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장신구들은 오토니엘이 작품 제작을 위해 방문했던 멕시코의 전통 유리 공예품을 모방한것이다. 각병에는 갈고리, 하트, 별, 목걸이등 2000개의 다양한 모형들이 떠다니는데 작가가 수집해온 봉헌물의 일부와 이전 작품들의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 장신구들이 인간의 장기를 의미하는 듯 한데 단 한개도 제대로 완벽한 것은 없어보인다. 즉 오토니엘은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 하다고 생각 하고 있는것 같다. 또 언뜻 보면 유리병 자체가 눈물인 듯 보이기도..





- 나의 침대(2003) -
My bed

이 작품 역시 유리 구슬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유리구슬과 고리를 이용해 만들어져 있음에도 약해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려하다는 느낌이 먼저든다. 침대위의 지붕같은 곳의 파란색 유리 구슬은 제우스의 눈물 혹은 물고기의 비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작품은 어느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 황금 빛 비 (2002) -

이 작품은 바다를 뜻한다고 한다. 잘 보면 천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그 구멍 주위로 금박이 배열 되어있다. 얇은 커튼 사이로 햇빛이 비치면 바닥에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화려하게 수 놓일 것 같은데 하필 내가 갔었던 날은 바람과 구름이 매우 많은 날이어서 그런 장관을 볼 수는 없었다.




 
 


- 소원을 비는 벽(1995) -
The wishing Wall

 


<소원을 비는 벽>은 1995년 베를린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유황, 인, 왁스 등의 재료를 활용한 오토니엘의 실험적인 초기작업과 이후의 대규모 유리 설치작업을 시기적으로 구분 짓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인이 칠해진 대규모 벽면으로 된 일시적 설치물로, 비치된 성냥개비를 관객들이 벽 표면에 긁어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며 참여하게 된다. 관객들이 성냥을 그으며 남게 되는 상처의 흔적들은 하나의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될 뿐만 아니라. 작가와 관객사이의 교감을 이끌어내며 소원을 빈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치유의 과정에까지 이를 수 있다. 본 전시실에 입장하기 이전에 직원이 성냥을 나누어 주는데 무엇인가 작품을 다 보고 마무리의 과정으로써 더 어울리는 듯 싶어서 작품을 다 본뒤에 소원을 빌었다. 토샘의 뒤통수가 나왔지만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소원을 빌고난 성냥개비는 벽 주위에 놓아 무엇인가 소원이 쌓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였는데 앞으로 동성애, 상처, 고통, 신체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외에도 몇몇 작품이 더 있었지만 이 고질적인 수전증이 ☞☜.. 작품을 작품이 아니게 만들어 버려서 더 올리지 못했다. 작가 본인의 고향인 프랑스의 퐁피듀에서의 첫 전시회 이후 외국에서의 첫 전시회라는데 그 나라가 우리나라가, 그리고 내가 봤다라는 것이 뿌듯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현대 예술이 그렇듯 작품이 가진 미학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이 가진 의미를 잘 보여주는 생각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오토니엘은 세상에 마법을 걸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봤을때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마법은 나에게 적중했다.


"우리는 많은 규범들이 무너져 내리는, 진실로 비극적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예술가로서 나는 세상에 다시 마법을 걸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상의 예술가는 아니다. 나의 세계와 조각은 분명 실재하지만, 여러분이 나의 작품을 바라봤을 때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재료의 경이로움 혹은 감정의 진실함과 같은 매우 근본적인 것들을 신뢰한다. 이것은 순진한 시각이 아니라 생존자의 통찰력이다."   - 장 미셸 오토니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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